작년 말, 한 기업에서 신사업 관련 마케팅 포지션을 오픈했습니다.
JD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R&R이 명확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직접 인사팀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저희도 아직 정리 중입니다."
반년이 지났습니다. 채용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채용 조건을 완화해서 다시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후보자 한 명이 그 면접을 다녀왔습니다.
면접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보자는 핵심을 바로 짚었습니다.
"포지션 이름이 바뀐 채로 같은 업무를 뽑고 있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뭔가요?"
회사의 답변은 솔직했습니다. 다만 솔직한 이유가 몰라서였습니다. 아직 틀이 없고, 초기 단계라 어떤 역할인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600명 규모의 회사가, 반년째 채용 중인 포지션에 대해서요.
헤드헌터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냐면
신사업 초기에 R&R이 불명확한 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해야 할 채용은 하나입니다.
해당 분야 베테랑을 리드급으로 데려와서, 권한과 책임을 통째로 주는 것.
마케팅이 뭔지 모르는 조직에서 실무자를 뽑아봤자, 그 사람은 매 단계마다 설명해야 하고 매번 내부 장벽에 부딪힙니다. 조직 바깥이랑 싸워야 할 마케터가 조직 안에서 먼저 소진되는 구조입니다.
채용을 계속 하는데 계속 안 되고 있다면, 채용 방식이 아니라 채용하려는 역할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면접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면접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자리"
틀렸습니다. 정확하게는 이렇습니다.
면접은 회사와 후보자가 서로를 평가하는 자리입니다.
회사는 이 사람이 우리 팀에 맞는지를 보고, 후보자는 이 회사가 내 커리어에 맞는지를 봐야 합니다. 어느 한쪽만 평가하는 구조는 면접이 아니라 심사입니다.
그러려면 후보자도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날카롭게.
- 어떤 팀에서 일하게 되나요?
- 이 포지션에 기대하는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성과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나요?
- 이 팀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뭔가요?
이런 질문들을 통해 확인해야 할 건 단 하나입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 실제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가.
연봉, 복지, 네임밸류는 입사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3년 후 내 커리어를 결정하는 건 결국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입니다. 그걸 면접장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입사 후에 확인하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서상
이런 얘기를 하면 꼭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그렇게 질문하면 버릇없어 보이지 않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보는 회사라면 오히려 잘된 겁니다. 후보자가 자기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걸 불편해하는 조직이라면, 입사 후에도 비슷한 문화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질문의 방식은 중요합니다. 따지듯이 묻는 것과 진지하게 확인하는 건 다릅니다. 하지만 질문 자체를 참는 건 답이 아닙니다.
내 커리어의 주도권은 내가 쥐어야 합니다. 면접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면접 본 후보자에게 배운 것
이 후보자는 면접 내내 질문했습니다. 포지션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 마케팅이 영업의 보조인지 주도적 역할인지, 예산 의사결정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불편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게 맞습니다.
수동적으로 잘 보이려는 면접보다, 역할과 책임을 정면으로 묻는 면접이, 길게 보면 본인에게도, 회사에게도 훨씬 낫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오늘 이 후보자는 자기 커리어에 대한 주도권을 면접장에서도 놓지 않았습니다.
오퍼레터가 드리는 이번 주 한 줄
회사가 역할을 모른 채 뽑는 자리는, 입사 후에도 역할을 모른 채 일하게 됩니다.
그걸 면접장에서 확인하는 것, 그게 커리어 주도권의 시작입니다.